[Ai 창작 소설] 그리니치 오차: 표준시 이전의 너 - 2장 멈춘 시계들의 도시

Ai/Chat GPT|2026. 3. 14.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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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멈춘 시계들의 도시

은종의 사람들은 멈춘 시계를 바로 다시 맞추지 못했다.

그건 단순히 놀라서가 아니었다.
누구의 시계가 틀렸는지, 아니면 무엇이 먼저 멈춘 것인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배수로에서 빠져나온 서진은 낮은 담벼락을 따라 몸을 숙인 채 북쪽 제분소 방향으로 달렸다. 겨울 끝자락의 새벽 공기는 축축했고, 아직 해가 뜨지 않았는데도 도시 전체가 마치 한낮 직전처럼 희미하게 밝았다가 다시 어두워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골목 바닥의 물웅덩이마다 비친 빛의 각도가 서로 달랐다. 어떤 웅덩이엔 아직 새벽 전의 검은 하늘이 담겨 있었고, 어떤 웅덩이엔 벌써 동쪽이 붉게 트고 있었으며, 어떤 웅덩이엔 종탑 꼭대기 공시등만 유난히 푸르게 떠 있었다.

서진은 일부러 발밑을 보지 않으려 했다.

이럴 때 잘못 시선을 주면, 자기 발이 지금 밟는 땅과 다른 시각의 땅을 함께 밟고 있다는 감각이 몰려왔다. 그러면 거의 꼭 중심을 잃었다.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공시청 현장집행국은 사건이 커질수록 인원을 분산하지 않고 물길과 종탑, 주요 교차로부터 먼저 닫아 버린다. 할머니가 그를 북쪽 제분소로 보내려 한 것도 그곳이 은종에서 몇 안 되는 “시간 장치 밖의 공간”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오래된 수차와 곡물분쇄기의 울림이 공시 종의 주파수를 조금 흩뜨린다고, 예전에 할머니가 무심히 말한 적이 있었다.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을 무렵, 그는 골목 어귀에서 멈칫했다.

앞쪽 삼거리 한가운데, 장터에서 쓰는 대형 벽시계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누가 일부러 던진 듯 유리가 깨졌고, 금속 테두리는 찌그러져 있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바늘이었다. 시침과 분침, 초침이 모두 다른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침은 새벽 여섯 시 부근, 분침은 열두 시를 넘긴 지점, 초침은 아예 반 바퀴를 돌아 거꾸로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계 주변에, 사람 셋이 꼼짝 않고 서 있었다.

한 사람은 빵 배달부였다.
한 사람은 물동이를 든 중년 여자였다.
한 사람은 학교 제복을 입은 소년이었다.

셋 다 시계를 보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누구도 가까이 가지 않았다. 서로 한두 걸음 거리를 둔 채, 누군가 먼저 “지금이 몇 시인지” 말해 주길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굳어 있었다.

서진은 벽에 등을 붙였다.
이상 현상이 생긴 직후의 사람들은 자주 저렇게 됐다.
하루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면, 몸보다 먼저 사고가 멈춘다.

그때 학교 제복을 입은 소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등교 시간 아닌가요?”

물동이를 든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첫차도 안 다녔어.”

빵 배달부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아냐, 난 분명히 반죽을 다 끝냈어. 오븐도 돌렸고, 세 번째 종도 들었단 말이야.”

세 사람의 목소리는 모두 진짜 같았다.
문제는 셋이 각자 다른 새벽을 붙잡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진은 더 머물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이런 장면에 오래 노출될수록 자기 감각도 흔들렸다. 그는 몸을 낮춘 채 다시 골목 안쪽으로 뛰었다.

주머니 속 회중시계가 아주 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제분소는 도시 북쪽 외곽, 물길이 크게 꺾이는 지점에 있었다.

대조율 이전부터 그 자리에 서 있었다는 돌건물은 종탑보다 낮았지만 이상하게도 언제나 더 오래된 그림자를 드리웠다. 외벽엔 밀가루 먼지가 하얗게 들러붙어 있었고, 측면 수차는 아직 완전히 돌지 않았는데도 물 흐르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서진이 도착했을 때, 제분소 바깥 마당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그는 주변을 한 번 살핀 뒤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안쪽은 바깥보다 훨씬 어두웠다. 곡물 자루, 목재 기둥, 멈춘 분쇄기, 낡은 톱니가 층층이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바닥엔 밀가루와 흙탕물이 뒤섞여 미끄러웠고, 천장 틈으로 들어오는 빛은 거의 없었다. 대신 수로를 따라 들어온 물소리가 내부 전체를 둔하게 채우고 있었다. 그 소리 덕분인지 머리를 조여 오던 통증이 조금 누그러졌다.

“늦었네.”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렸다.

서진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오른쪽 기둥 뒤쪽에서 누군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회색 외투에 짙은 남색 목도리, 물기 어린 머리카락을 느슨하게 묶은 여자였다. 나이는 서진보다 한두 살쯤 많아 보였고, 눈빛은 새벽 공기보다 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녀는 서진의 얼굴보다 먼저 그의 오른쪽 주머니 쪽을 봤다.

“그걸 갖고 왔군.”

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여자는 한 걸음 더 다가왔지만, 일정 거리 이상은 좁히지 않았다. 경계하는 쪽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공시청이 네 집을 봉쇄했어. 종탑 광장엔 벌써 세 번째 쓰러진 사람이 나왔고. 도시 전체 시계는 아직 복구 안 됐고.”

“당신 누구예요.”

“내가 먼저 묻지. 회중시계, 누가 줬어.”

“왜 그걸 알아요?”

여자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천천히 목도리 안쪽에서 얇은 금속 패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 패는 밀가루 먼지 위를 한 번 미끄러지더니 서진 발치에 멈췄다. 작은 기록관 표식이었다. 공시청 소속 하급 기록 보조원들이 쓰는 신분패. 그러나 표면 일부가 칼로 긁어낸 듯 훼손되어 있었다.

“유란.”

그녀가 말했다.

“기록보정부 소속이었어. 지금은 아니고.”

서진은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이었어”라는 말이 귀에 걸렸다.

유란은 서진의 표정을 읽은 듯 짧게 덧붙였다.
“그만뒀다고 생각하면 편하겠네.”

“공시청 사람이 왜 여기 있죠.”

“공시청 사람이 아니라서 여기 있는 거야.”

바깥에서 멀리 금속 충돌음이 들렸다. 집행자들이 거리 봉쇄 장치를 설치하는 소리였다. 유란은 그쪽을 잠깐 들은 뒤 다시 서진을 봤다.

“시간 없어. 네가 들고 있는 시계, 뒤쪽 경첩 안쪽에 별 하나 빠진 문양 있지.”

서진의 손이 반사적으로 주머니를 눌렀다.

있었다. 분명 있었다.
그는 방금 전까지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유란이 말했다.
“그건 제로 메리디안 프로젝트 표식이야.”

서진의 숨이 멎었다.

어머니가 남긴 기록에서도, 할머니의 중얼거림에서도 그 이름을 들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단어 자체가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오래전 꿈속에서 들은 것처럼.

“누가 말했죠?”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네 어머니가.”

서진의 눈빛이 굳었다.

유란은 그 반응을 예상한 듯, 곧바로 손을 들며 말했다.
“직접 만났다는 뜻은 아냐. 남은 기록에서 읽은 거야. 그리고 그 기록 때문에 우리 아버지가 사라졌지.”

침묵이 흘렀다.

제분소 안쪽 수차가 느리게 끼익 소리를 냈다. 아직 완전히 돌아가지도 않는데 축이 먼저 울고 있었다. 마치 물보다 시간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것처럼.

서진은 쉽게 믿지 않았다. 하지만 거짓말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었다. 유란은 너무 정확하게, 너무 적은 말로 핵심만 짚었다. 어중간한 속임수라면 오히려 더 많은 설명을 붙였을 것이다.

“왜 나를 기다렸어요.”

“은종에 이상 징후가 생긴 순간, 누군가가 종탑보다 먼저 시간을 봤을 거라 생각했어.”

“그게 왜 나죠.”

“네 집 주소가 봉인 기록에 있었거든.”

그 말은 서진을 얼어붙게 했다.

“무슨 기록.”

유란은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말했다.
“삭제된 출생 등록부.”

서진의 목 안이 타들어 갔다.

“넌 출생 직후 사망 처리됐어. 그런데 같은 시간대에, 같은 주소에서, 이름 없는 유아의 생체 조율 값이 한 번 더 올라와. 정상 문서에는 없어. 폐기 문서 잔흔에서만 남아 있었지.”

그녀는 서진의 반응을 보고 목소리를 낮췄다.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이상하게도 그 말이 제일 믿기 어려웠다.

서진은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오늘 새벽녘의 장면들이 뒤섞였다. 열려 있던 어머니 방 문, 바닥 밑 회중시계, 공시청 집행자의 질문, 할머니의 마지막 말. 그리고 지금, 폐기 문서와 사망 처리.

어머니는 자신을 살린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지운 것이었다.

“시계를 보여 줘.”

유란이 말했다.

“왜.”

“그 안에 기록이 들어 있을 가능성이 있어.”

“시계에?”

“보통 시계가 아니니까.”

유란은 천천히 손바닥을 내밀었다.
“강제로 뺏을 생각은 없어. 하지만 집행국이 먼저 가져가면 넌 평생 그 안에 뭐가 있었는지도 모르고 끝나.”

서진은 그녀를 한 번, 바깥 어둠을 한 번 봤다.
결정해야 했다.

그는 마침내 회중시계를 꺼냈다.

유란의 시선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그녀조차 실제 물건은 처음 보는 듯했다. 시계 표면의 별 문양, 검게 그을린 경첩, 닳은 은빛 케이스를 바라보는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바뀌었다. 놀람이라기보다, 오래 찾던 흔적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의 긴장에 가까웠다.

“열어 봐.”

서진이 뚜껑을 열자, 제분소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처음엔 단순한 착각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수차 소리가 한 박자 느려졌고, 천장 틈의 빛이 한순간 더 밝아졌다가 멈췄다. 유란의 숨도 미세하게 정지한 듯 보였다. 그리고 회중시계 안쪽의 낯선 눈금들이 조금 전보다 선명하게 떠올랐다.

유란이 가까이 몸을 숙였다.

“문장 읽혀?”

서진은 시계를 들여다봤다.
아까 보았던 문장은 이미 흐려져 있었다. 대신 다른 글자들이 아주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안쪽 금속 아래에 숨어 있던 잉크를 열로 데우는 것처럼.

“…북…수로…”

유란이 바로 반응했다.
“더.”

“북수로 제7수문… 아래…”

문장은 거기서 끊겼다.
다음 줄이 올라오려는 순간, 회중시계가 갑자기 뜨겁게 달아올랐다.

서진이 손을 놓칠 뻔했다.

유란이 날카롭게 말했다.
“닫아.”

그가 시계를 닫자, 제분소 안의 모든 소리가 동시에 돌아왔다. 수차가 다시 정상적인 박자로 물을 밀었고, 천장 틈 빛도 원래대로 희미해졌다. 서진의 손끝엔 화상처럼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유란이 그 자국을 보고 입술을 굳혔다.

“반응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네.”

“이게… 뭐예요.”

“기록 격납형 시계일 가능성이 커. 공시청은 종종 문서를 종이로 안 남겨. 시간 반응체에 묻혀 두면, 특정 조건에서만 읽히게 할 수 있거든.”

“어머니가 그걸 남긴 거라면…”

“네가 읽게 하려고 남긴 거지.”

그 말이 끝난 직후였다.

바깥에서 물 흐르는 소리와는 전혀 다른 금속 마찰음이 들렸다. 유란은 즉시 몸을 돌려 제분소 창틈 쪽으로 다가갔다. 서진도 따라가려 했지만 그녀가 손짓으로 제지했다. 잠깐 뒤, 그녀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찾았다.”

“누가.”

“현장집행국. 둘이 아니야. 넷.”

서진의 목이 말랐다.

유란은 짧고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제분소 구조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눈이었다.
“정면 문은 막혔고, 수로 아래쪽도 곧 봉쇄당해. 다른 길 써야 해.”

“당신은 왜 도와주는 거죠.”

유란은 서진을 돌아보지 않은 채 대답했다.
“네가 살아 있어야,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가 생기니까.”

“그게 전부예요?”

“아니.”

그녀가 이번엔 서진을 똑바로 봤다.

“공시청은 기록을 지워. 사람도 지우고. 내 아버지도 그렇게 됐어. 그런데 네 어머니는 지워지기 전에 뭔가를 남겼고, 그게 아직 살아 움직이고 있어. 그럼 난 그걸 따라가.”

그 말에는 설명보다 오래된 결핍이 먼저 배어 있었다.
서진은 처음으로 유란을 완전히 믿지는 못해도, 적어도 지금 자신보다 덜 거짓인 사람일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제분소 서쪽 벽 너머로 발소리가 퍼졌다.
금속 부츠가 젖은 돌을 밟는 소리.
하나, 둘, 셋, 넷.

유란이 빠르게 말했다.
“이 건물 아래엔 예전 물길 조사용 하부 통로가 있어. 지금은 지도에서 지워졌지만, 난 본 적 있어. 북수로 제7수문 쪽으로 이어질 거야.”

“아까 시계에 뜬 문장.”

“맞아.”

“그럼 어머니가 거길—”

“나가서 추측해.”

그녀는 곡물 자루 더미 뒤쪽 바닥널을 발끝으로 밀어 올렸다. 안쪽엔 사람 하나 간신히 지나갈 만큼 좁은 석조 통로가 열렸다. 오래 사용하지 않은 냄새가 올라왔고, 아래쪽에선 검은 물이 아주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먼저 내려가.”

서진이 몸을 움직이려던 순간, 정문에서 큰 충돌음이 울렸다.

쾅.

문이 열리지 않았다. 집행자들이 이미 확인 사격처럼 장비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제분소 외벽엔 오래된 보호 철판이 일부 덧대어져 있었지만 오래 버티진 못할 것이었다.

“빨리.”

유란이 재촉했다.

서진은 망설이다가 통로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돌계단은 미끄러웠고 아래는 훨씬 더 어두웠다. 두 계단쯤 내려간 뒤 그가 뒤돌아보자, 유란은 아직 위에 서 있었다. 그녀는 무언가를 듣고 있었다. 정확히는, 건물 바깥의 발소리와 안쪽 수차 소리 사이를 가르는 듯한 표정이었다.

“안 와요?”

유란은 대답 대신 허리춤에서 작은 금속 원통 하나를 꺼냈다. 기록보정부에서 쓰는 잉크 봉인통처럼 보였다.

“몇 초 벌어야 해.”

“그거 위험한 거 아니에요?”

“안 위험한 방법은 진작 끝났지.”

그리고 그녀는 원통을 수차 축 아래 던졌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원통이 깨지자 묽은 은빛 액체가 톱니 사이로 번졌다. 다음 순간, 분쇄기 전체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역회전하기 시작했다. 물은 아래로 흐르는데 톱니는 반대로 도는, 말이 안 되는 움직임이었다. 건물 전체가 한 번 크게 떨렸다. 정문 바깥에서 누군가 욕설을 내뱉었다.

유란이 통로 안으로 뛰어들며 바닥널을 닫았다.

바로 뒤이어 위쪽에서 묵직한 파열음이 터졌다.

제분소의 시간이 한순간 어긋난 것이다.


하부 통로는 예상보다 길었다.

두 사람은 거의 말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통로 천장은 낮고 습했으며, 돌벽 곳곳엔 오래전 물이 스며들다 남긴 하얀 염분 자국이 별자리처럼 번져 있었다. 위쪽 도시가 어떤 상태인지 보이지 않았지만, 간헐적으로 먼 울림이 내려왔다. 종소리인지, 기계음인지, 아니면 멈춘 시계를 억지로 되감는 소리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한참을 걷다 유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네 어머니 이름, 윤서 맞지.”

서진은 걸음을 늦추지 않은 채 말했다.
“…맞아요.”

“조율연구부에서 사라진 연구관 명단에 있었어. 공식 사유는 실험실 사고. 그런데 기록의 시간표가 이상했지.”

“어떻게.”

“사망 보고서가 사고 보고서보다 먼저 등록돼 있었어.”

서진은 그 자리에서 멈출 뻔했다.

“뭐라고요?”

“딱 7분 먼저.”

통로 안 공기가 갑자기 차가워진 듯했다.

7분.
무슨 의미인지 아직은 몰랐다. 하지만 그 숫자는 이상할 정도로 정확했다. 단순 행정 실수라기엔 너무 짧고, 너무 선명했다.

유란이 말을 이었다.
“처음엔 보정 오류라 생각했어. 그런데 비슷한 방식으로 시각이 앞당겨진 삭제 문서들이 더 있었어. 전부 대조율 실패 보고나 비조율 출생자 관련이었고.”

“그걸 왜 당신이 찾았죠.”

“기록은 지워져도 완전히 사라지진 않거든.”

그녀는 손전등 대신 작은 유리병을 꺼내 흔들었다. 병 안쪽 액체가 옅은 청색으로 빛났다. 물의 기운을 응용한 흔적 추적등이었다.

“남은 흔적이 있어. 문서가 사라진 자리에, 지운 사람의 리듬이 남아. 난 그걸 읽는 편이고.”

서진은 그 말을 곱씹었다.
삭제된 자리의 리듬.
지워진 사람의 흔적.
그건 어쩌면, 자신이 시간의 틈에서 보는 것과 비슷한 종류일지도 몰랐다.

통로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앞쪽엔 쇠창살로 막힌 수문이 있었고, 물은 그 아래 좁은 틈으로 흘러나가고 있었다. 수문 벽면엔 희미하게 숫자 각인이 남아 있었다.

제7수문이었다.

유란이 한숨처럼 말했다.
“맞췄네.”

수문 오른편 벽돌 일부가 다른 부분보다 어둡게 젖어 있었다. 서진은 가까이 다가갔다. 회중시계가 다시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시계를 꺼내 들었다.

유란이 옆에서 물었다.
“또 읽힐 것 같아?”

“모르겠어요.”

“해.”

서진은 뚜껑을 열었다.

이번엔 문장이 더 빨리 떠올랐다.

“제7수문… 오른쪽 셋째… 벽돌 뒤…”

글자가 흔들렸다가 사라졌다.
서진은 곧장 손을 뻗어 벽면을 더듬었다. 첫째 벽돌, 둘째, 그리고 셋째. 손끝에 닿는 결이 달랐다. 겉은 젖은 돌처럼 차가운데 안쪽은 이상하게 미지근했다.

그가 벽돌을 힘주어 밀자, 안쪽에서 작은 홈이 튀어나왔다.

유란이 먼저 그것을 잡아당겼다.
숨겨진 얇은 금속 상자였다. 손바닥 두 개를 합친 정도 크기. 밀봉 장치가 달려 있었고, 표면에는 회중시계와 같은 별 문양, 다만 별 하나가 비어 있는 표식이 찍혀 있었다.

서진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정말 여기에 무언가를 남긴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순간 통로 뒤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둘이 동시에 몸을 돌렸다.

아주 멀진 않았다. 누군가 하부 통로 입구를 찾아낸 것이다. 물을 밟는 소리, 금속이 벽을 스치는 소리, 그리고 짧은 명령. 집행국이었다.

유란이 낮게 욕설을 뱉었다.
“젠장. 생각보다 빠르네.”

“어떻게 해요?”

그녀는 금속 상자를 서진에게 던지듯 건넸다.
“그건 네가 가져.”

“왜요?”

“네 어머니가 널 위해 숨겼으니까.”

“같이—”

“말 길게 하지 마.”

유란은 쇠창살 아래 물 틈을 보더니 계산하듯 눈을 좁혔다. 사람 하나가 기어서 빠져나갈 수는 있었다. 둘이 동시에 가기엔 무리였다.

뒤쪽 발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먼저 나가.”
유란이 말했다.

“같이 가야죠.”

“지금 넌 나를 믿는 것도 아니잖아.”

서진은 대꾸하지 못했다.

유란은 아주 짧게 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은 웃음이라기보다, 이미 익숙한 선택 앞에서 잠깐 굳어지는 사람의 표정에 가까웠다.

“괜찮아. 나도 아직 너 완전히 안 믿어.”

그녀는 허리춤에서 또 다른 작은 금속 패를 꺼내 서진 손에 쥐여 줬다. 자신의 훼손된 기록관 신분패였다.

“밖으로 나가면 서쪽 수문길 따라 내려가. 강변에 폐기된 수문 관리소가 하나 있어. 거기서 다시 만나. 해 지기 전까지만 기다릴게.”

“안 오면요.”

“그럼 네가 먼저 도망가.”

뒤쪽 어둠 속에서 등불이 하나 켜졌다.
집행국 추적등의 창백한 빛이었다.

유란이 서진을 한 번 밀었다.
“지금.”

서진은 금속 상자와 회중시계를 움켜쥔 채 쇠창살 아래 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차가운 물이 허리까지 차올랐다. 돌에 옷이 긁히고 손등이 찢어졌지만 멈추지 않았다. 뒤쪽에서 유란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멈춰!”

집행자에게 하는 말인지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서진은 마지막으로 몸을 비틀어 틈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강한 물살은 아니었지만 발이 미끄러져 한쪽 무릎을 크게 찧었다. 그는 겨우 자세를 잡고 뒤를 돌아보았다.

쇠창살 안쪽 어둠에서 푸른 추적등과 유란의 청빛 유리병이 서로 다른 리듬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두 빛이 잠깐 겹치는 순간, 그는 아주 짧게 보았다.

유란의 얼굴 뒤로, 물의 흔적이 아니라 다른 것이 번졌다.
낡은 문서실.
젖은 종이 냄새.
누군가 빨간 선으로 그은 이름 하나.
그리고 그 이름 위에 덧씌워진 또 다른 이름.

윤서.

서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장면은 사라졌고, 통로 안에선 금속 부딪히는 소리와 짧은 비명이 울렸다.

더 보면 안 된다.

그는 이를 악물고 몸을 돌려 물길 바깥으로 기어올랐다. 아직 진짜 아침은 오지 않았는데도, 은종의 하늘은 누가 잘못 섞은 물감처럼 회색과 푸른빛과 붉은빛이 층층이 겹쳐 있었다. 도시의 모든 시계는 여전히 멈춰 있었고, 종탑은 더 이상 종을 울리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침묵이 더 시끄러웠다.

서진은 젖은 손으로 금속 상자를 더듬었다.
차갑고 단단했다.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안쪽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감각이 전해졌다.

문서일까.
지도일까.
아니면 어머니의 목소리일까.

그는 강변 낮은 둑을 따라 서쪽 수문길로 달리기 시작했다.

뒤쪽 도시 어딘가에서, 멈춰 있던 시계 하나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렸다.

틱.

딱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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