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창작 소설] 그리니치 오차: 표준시 이전의 너 - 4장 북서 외곽 폐선 분기점

Ai/Chat GPT|2026. 3. 16.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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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북서 외곽 폐선 분기점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은종의 소리는 줄어들었다.

도시 중심부에선 늘 종소리와 기계음, 사람 발소리와 수차의 울림이 겹쳐 있었다. 공시가 제대로 돌아가는 날이면 그 소리들은 하나의 얇고 단단한 막처럼 도시 전체를 감쌌다. 하지만 북측 제7수문을 지나 북서 외곽으로 접어들자, 그 막은 서서히 찢기기 시작했다. 길가의 풀들은 바람보다 늦게 흔들렸고, 버려진 전신주는 이미 누군가의 손에서 역할을 잃은 지 오래인 뼈처럼 기울어 있었다. 발밑 자갈길은 철로 쪽으로 이어졌지만, 그 위를 걷는 감각은 묘하게 일정하지 않았다. 어떤 구간에서는 서진의 발소리가 너무 또렷하게 울렸고, 어떤 구간에서는 분명 발을 내디뎠는데도 소리가 조금 뒤에 따라왔다.

서진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려 했다.
그러나 유란이 계속 앞에서 걸었다.

그녀는 거의 쉬지 않았다. 북측 제7수문 관리소에서 나온 뒤로 말수도 더 줄었다. 젖은 외투 끝이 무릎 근처에서 무겁게 흔들렸고, 찢긴 오른쪽 소매 안쪽으로 손목에 감은 검은 보호끈이 보였다. 피가 배어나왔는지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가 일부러 오른팔을 덜 쓰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

“괜찮아요?”

서진이 묻자, 유란은 걷던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 대답했다.
“아직은.”

“아직은, 이라는 말은 괜찮지 않다는 뜻 아닌가요.”

“지금은 멈추면 더 안 괜찮아져.”

짧고 건조한 답이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날이 서 있지는 않았다.

서진은 더 묻지 않았다. 어머니 기록을 읽은 뒤부터, 그는 사람의 침묵을 전보다 더 조심해서 다루게 됐다. 모든 침묵이 거짓은 아니고, 모든 대답이 진실도 아니다. 지금 유란은 숨기고 있다기보다 버티고 있는 쪽에 가까웠다.

둘은 북쪽 물길이 끝나고 철도용 성토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잠시 멈췄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두 갈래였다. 하나는 공시청 검문소가 있는 공식 북부 도로, 다른 하나는 폐선 철로를 따라 북서로 휘어지는 오래된 화물 분기선이다. 공식 도로 쪽은 멀리서도 봉쇄등이 보였다. 푸른색 신호등 셋이 일정한 간격으로 점멸하며 검문 구역을 표시하고 있었다.

유란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면은 못 지나.”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폐선 쪽이죠.”

“응.”

“저기 정말 사람이 있나요.”

“있을 거야.”

“확신은 없네요.”

“그 인간한테 확신이란 단어는 잘 안 맞아.”

유란은 그렇게 말하고는 한숨 같은 숨을 내쉬었다.
피로가 목소리 안에 아주 짧게 비쳤다.

“단휘는 정해진 자리에 가만히 기다리는 타입이 아니야. 다만 일이 터질 만한 곳에 먼저 가 있을 확률이 높지.”

“그게 더 불안한데요.”

“맞아.”

그 솔직함 때문에, 서진은 오히려 조금 안심했다.

폐선 철로는 풀에 절반쯤 묻혀 있었다. 오래전에 쓰던 목침목은 물을 먹고 검게 썩어 있었고, 군데군데 볼트가 빠진 자리에 잡초가 돋아났다. 그러나 완전히 죽은 길은 아니었다. 철은 녹슬었어도 선형은 남아 있었고, 어디론가 향했던 의지는 아직 끊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선로가 북서로 휘어지는 곡선 끝엔 낡은 신호탑 하나가 서 있었다. 창문이 깨진 탑 상단에는 붉은 신호등이 희미하게 켜져 있었다.

서진의 발이 저절로 멈췄다.

붉은 신호등.

회중시계가 보여 준 장면 속에도 있었다.
철로 위의 사람 하나.
붉은 신호등.
아직 도착하지 않은 열차의 굉음.

유란도 그걸 떠올린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저기다.”

“아직 열차는 안 다니는 폐선 아니었어요?”

“공식적으론.”

그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서진은 바람 사이에 섞인 낮은 진동을 느꼈다.

처음엔 발밑 땅이 떨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조금 달랐다. 진동이 땅에서 올라오는 게 아니라, 더 멀고 더 깊은 곳에서 먼저 도착하고 있었다. 몸보다 감각이 먼저 듣는 소리. 오지 않았는데 이미 가까워지고 있는 소리.

서진은 무의식적으로 철로 너머 어둠을 바라봤다.

그리고 보았다.

신호탑 아래, 철길 한가운데 사람 하나가 서 있었다.

등을 보인 남자였다.
짧게 친 검은 머리, 군데군데 해진 검은 상의, 왼손은 주머니에 넣은 채 오른손만 비스듬히 내리고 있었다. 자세는 느슨했지만 이상하게도 빈틈이 없어 보였다. 그는 멀리서 보면 그냥 철로 위에 서 있는 젊은 남자 하나에 지나지 않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주위 공기 자체가 그를 중심으로 먼저 긴장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단휘.”

유란이 낮게 말했다.

남자가 돌아봤다.

얼굴은 생각보다 어렸다. 스무 살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눈빛은 또래의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오래 부수고 오래 버텨 본 사람 특유의, 너무 빨리 사는 사람의 눈빛. 그는 유란을 보더니 시선을 서진 쪽으로 옮겼다. 그리고 아주 짧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생각보다 늦었네.”

서진은 순간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 대사는, 이미 들은 적이 있었다.
제분소에서 유란이 자신에게 했던 말과 거의 같았다.

단휘는 철로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대신 서진을 향해 턱을 한번 까딱였다.
“네가 그 애구나.”

“무슨 뜻이죠.”

“죽었다고 기록됐다가 살아 있는 애.”

그 말이 너무 쉽게 나와서, 서진은 오히려 대꾸하지 못했다. 유란이 차갑게 끼어들었다.
“반가운 척할 시간 없어.”

“반가운 척 안 했어.”
단휘가 대꾸했다.
“그냥 맞는 말 했지.”

유란은 더 말하려다 말고 철로 끝 어둠 쪽을 봤다.
“얼마나 남았어.”

단휘의 표정이 아주 조금 바뀌었다.
장난기 비슷한 것이 걷히고, 대신 얇은 긴장이 드러났다.

“길면 3분.”

“무슨 3분.”

서진이 묻자 단휘가 손가락으로 철길을 툭 쳤다.

“열차.”

서진의 심장이 바로 내려앉았다.
“폐선인데요.”

“그래서 더 문제지.”

단휘는 철로 위에서 천천히 몸을 돌려 북쪽 어둠을 바라봤다.
“공시청은 정식 노선 말고도 비상 수송선 몇 개를 숨겨 둬. 기록엔 없는 열차, 기록엔 없는 인원, 기록엔 없는 물건들 실어 나르는 데 쓰는 거지. 오늘 같은 날은 꼭 하나씩 튀어나와.”

유란이 물었다.
“몇 량.”

“아직은 안 보여. 그런데 소리가 너무 곧아. 공차는 아니야.”

곧아.
그 표현이 서진의 귀에 걸렸다.

단휘는 단순히 “다가오고 있다”고 하지 않았다. 소리가 곧다고 했다. 마치 아직 도달하지 않은 열차의 성질 자체를 듣는 사람처럼.

유란이 서진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봤던 장면, 다시 떠올려 봐.”

서진은 눈을 감지 않았다. 감으면 오히려 다른 것들이 더 밀려들어 왔다. 그는 신호탑, 붉은 등, 단휘가 서 있던 철길 중앙, 그리고 멀리서 다가오는 진동을 동시에 붙잡으려 했다.

처음엔 흐릿했다.
그런데 회중시계가 주머니 안에서 미세하게 떨리는 순간, 장면 하나가 다시 올라왔다.

철길 위 사람 하나.
붉은 신호등.
열차의 굉음.
그리고 목소리.

늦으면 분기점이 아니라 사람부터 잃는다.

사람부터 잃는다.

서진은 눈을 뜨며 말했다.
“열차보다 사람이 먼저예요.”

단휘가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뭐?”

“분기점을 막는 게 아니라 사람을 잃는다고 했어요.”

유란도 같은 결론에 닿은 듯 표정이 굳었다.
“누가.”

“모르겠어요. 목소리는… 잘 모르겠는데, 경고처럼 들렸어요.”

단휘는 철로 위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좋아. 그럼 문제는 하나지. 오늘 여기서 누가 죽을 예정이냐.”

아무도 바로 답하지 못했다.

바람이 불며 신호탑 꼭대기의 붉은 등불을 흔들었다. 등은 꺼지지 않았지만, 순간적으로 빛이 반 박자 늦게 따라오는 것처럼 보였다. 서진은 그걸 보며 등을 타고 식은 것이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 이 분기점 자체가 이미 정상이 아니다. 신호가 빛나고 있는데도, 철로 주변 공기는 마치 아직 빛이 닿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때였다.

단휘가 갑자기 손을 들었다.
“조용.”

세 사람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처음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다음, 아주 멀리서 금속성 떨림 하나가 포개졌다.
그리고 다시.
그리고 다시.

열차였다.

공기보다 먼저 오는 소리.
철로보다 먼저 떨리는 진동.
서진은 몸이 먼저 그것을 알아챘다.

하지만 이상했다.
소리는 북쪽에서 오는데, 진동 일부는 남쪽 침목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마치 열차가 아직 오지 않았는데 이미 지나간 흔적이 발밑에 남아 있는 것처럼.

단휘가 짧게 욕설을 뱉었다.
“진짜로 끌고 왔네.”

유란은 곧장 신호탑 아래 전환기를 봤다.
녹슨 레버가 반쯤 잠겨 있었다.

“분기 방향이 안 맞아.”

“그래도 들어오겠지.”
단휘가 말했다.
“저런 건 방향보다 명령을 먼저 따르니까.”

“그게 더 문제예요?”
서진이 묻자, 단휘가 짧게 웃었다.
“이제야 맞는 질문 하네.”

그는 철로를 따라 몇 걸음 달려가다 멈췄다. 그리고 몸을 낮춘 채 침목 사이를 손으로 짚었다. 불의 결 사용자답게 그의 움직임은 이상하게도 빠르기보다 먼저였다. 달리는 속도 자체는 눈에 띄게 빠르지 않은데, 이미 거기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몇 초 뒤, 단휘가 소리쳤다.

“레버 아래에 사람 있어!”

서진과 유란이 동시에 움직였다.

신호탑 밑 분기 장치 아래쪽엔 좁은 정비구가 있었고, 풀과 흙이 덮여 있어 멀리선 잘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검은 옷자락 하나가 끼어 있는 게 보였다. 누군가 몸 절반이 철제 구조물 안으로 말려 들어간 채 의식을 잃고 있었다.

서진의 숨이 멎었다.

아까 장면 속 “철길 위 사람”은 단휘만 뜻한 게 아니었다.
열차가 오면 먼저 잃는 건, 분기기 아래 끼어 있는 이 사람일 수도 있다.

유란이 바로 무릎을 꿇었다.
“살아 있어?”

단휘가 손목을 짚었다.
“아직.”

“누구죠?”

유란이 얼굴을 확인하려다 눈을 좁혔다.
“공시청 기술자… 종탑관리국 쪽 같은데.”

남자의 제복은 흙과 기름에 절어 있었지만, 소매 안쪽에 남은 푸른 실선 문양은 공시청 종탑관리국 소속 기술자 표식이었다. 그는 머리를 크게 다친 건 아닌 듯했지만, 오른쪽 다리가 분기 장치 하부 금속 틈에 끼어 빠지지 않았다.

열차 진동이 더 가까워졌다.

단휘가 짧게 계산하듯 말했다.
“1분 반.”

“너무 빨라.”
유란이 낮게 말했다.

“살릴 수 있어요?”
서진이 물었다.

유란은 남자의 다리와 금속 틈, 레버 상태를 빠르게 훑었다.
“뽑아내는 건 가능할지도 몰라. 하지만 그러면 전환기가 완전히 풀려.”

“그래서?”

단휘가 대신 대답했다.
“그래서 열차가 분기선 아니라 본선 쪽으로 튈 수도 있어.”

“본선이면?”

“공식 북부 도로 검문소.”

그 말은 곧, 지금 이 한 사람을 살리면 북부 검문소 근처의 다른 사람들, 혹은 공시청 봉쇄선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서진은 입 안이 말라붙는 걸 느꼈다.

선택의 형태가 너무 빨리 왔다.

어머니는 “시계를 부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더 단순하고 더 잔인한 문제 앞에 서 있었다.
이 사람 하나를 살릴 것인가, 아니면 더 큰 사고를 막기 위해 버릴 것인가.

유란의 얼굴도 굳어 있었다.
그녀는 공시청 사람을 위해 망설이는 게 아니었다.
망설이는 건, 이 선택이 자신들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지 알기 때문이었다.

단휘가 이를 악물었다.
“결정해.”

서진이 되물었다.
“왜 내가요?”

“네가 먼저 보잖아.”

그 말이 칼처럼 꽂혔다.

네가 먼저 보잖아.

서진은 분기기를 바라봤다.
그러자 갑자기 장면이 갈라졌다.

하나는 남자를 버리고 셋이 물러서는 장면.
열차는 그대로 분기기를 치고 지나가며 거대한 파열음을 남긴다. 검문소 쪽 선로 하나가 뒤집히고, 멀리서 사람들 비명이 터진다.

다른 하나는 남자를 억지로 끌어내는 장면.
분기 레버가 완전히 풀리며 열차가 방향을 잃는다. 하지만 단휘가 마지막 순간 레버를 몸으로 밀어붙이고, 유란이 물의 흔적을 이용해 남자의 움직임을 맞추고, 자신은… 자신은 무언가를 해야 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 장면에서 누군가가 다친다.
피가 튄다.
그리고 붉은 신호등 아래, 철길 한가운데 누군가 무릎을 꿇는다.

누구인지는 선명하지 않았다.

“서진.”
유란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들어왔다.
“지금.”

서진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처음으로,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선택”해서 말했다.

“살려요.”

단휘가 바로 움직였다.
“좋아.”

그는 분기 레버 쪽으로 뛰어갔다. 유란은 기술자의 어깨를 붙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의식 들리면 대답해. 듣고 있어? 지금 다리 뺀다.”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남자의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서진은 분기 장치 앞에 섰다.
“저는 뭘—”

“시계 열어.”
유란이 외쳤다.

“뭐요?”

“지금 이 장치가 어느 순간에 잠겨 있는지 봐야 해. 지금인지, 몇 초 전인지, 몇 초 뒤인지.”

서진은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그는 회중시계를 꺼내 열었다.

세상이 순간 얇아졌다.

금속 틈은 하나가 아니었다.
남자의 다리를 물고 있는 분기 장치는 세 겹으로 보였다.
하나는 이미 굳어 버린 현재의 장치.
하나는 아직 완전히 잠기기 전, 아주 조금 덜 닫힌 장치.
그리고 하나는 열차 충격 후 반대로 튕겨 나갈 장치.

서진은 거의 비명을 지르듯 말했다.
“왼쪽 아래 두 번째 톱니! 지금 말고, 그 전 상태가 남아 있어요!”

단휘가 듣자마자 몸을 틀었다.
그는 레버를 밀려던 방향을 바꿔 왼쪽 하부 톱니에 발을 걸어넣었다. 그리고 온몸으로 비틀었다.

금속이 끼익, 비명을 질렀다.

유란이 동시에 남자의 몸을 잡아당겼다.
“지금!”

서진은 시계 속에서 보이는 “덜 닫힌 순간”을 붙잡으려 애썼다.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팠다. 눈앞엔 현재와 몇 초 전의 금속 구조가 서로 겹쳐 보였고, 어느 쪽이 진짜인지 조금만 방심하면 감각이 미끄러졌다.

열차 굉음이 더 가까워졌다.
이제는 서진도 실제 소리로 들을 수 있었다.

철로 끝 곡선 너머, 검은 차체 앞부분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식 도색 없는 무표정한 기관차.
창문은 좁고 검었고, 전면 표지판은 아예 떼어낸 듯 비어 있었다.

기록에 없는 열차.

“빼!”
단휘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유란이 남자의 몸을 끌어냈다. 다리가 빠지는 순간, 분기 장치 하부에서 금속 파편이 튀었다. 그중 하나가 서진 쪽으로 날아왔고, 그는 피하려다 늦었다.

왼쪽 어깨에 뜨거운 통증이 번졌다.

하지만 비명을 지를 틈은 없었다.

“레버!”
유란이 외쳤다.

분기기가 다시 튀어 오르려 하고 있었다.
단휘가 몸으로 그것을 막았지만 오래 버티지 못한다.
서진은 아직 시계 속으로 열린 시야를 닫지 못한 채 철로 중앙을 봤다.

붉은 신호등.
달려오는 열차.
그리고 무릎을 꿇는 사람.

그 장면이 이번엔 더 선명했다.
무릎을 꿇는 건 단휘였다.

서진은 거의 본능적으로 뛰었다.

“안 돼!”

그는 단휘의 오른쪽 어깨를 잡아당기고, 동시에 회중시계를 분기 장치 위에 내리쳤다.

챙, 하는 소리와 함께 시계 케이스가 금속을 때렸다.
순간 모든 것이 느려졌다.

아주 짧게.
정말 한 박자보다도 짧게.

그러나 그 짧은 틈이면 충분했다.

단휘가 몸을 빼고, 유란이 정신 잃은 기술자를 끌고 철로 바깥으로 구르고, 서진 자신도 어깨의 통증을 무시한 채 옆으로 몸을 던졌다.

다음 순간, 기록 없는 열차가 분기점을 스치듯 통과했다.

굉음이 땅을 찢었다.
바람과 금속 파편과 먼지가 한꺼번에 터졌다.
기관차 하부가 분기 장치 일부를 갈아버렸고, 선로는 비명을 질렀지만 완전히 뒤집히진 않았다. 열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북서쪽 곡선을 따라 사라졌다.

아무도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서진은 흙바닥에 엎드린 채 숨을 몰아쉬었다. 귀 안이 멍멍했고, 왼쪽 어깨는 타는 듯 아팠다. 손을 대 보니 피가 배어 나왔다. 그보다 더 이상한 건 회중시계였다. 금속 케이스 한쪽이 찌그러졌고, 뚜껑 경첩이 반쯤 틀어졌지만 완전히 부서지지는 않았다.

유란이 먼저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기술자의 호흡을 확인하고, 다친 다리를 급히 묶은 뒤 단휘 쪽을 봤다.

“살아 있어?”

단휘는 철로 자갈밭에 등을 기대 앉은 채 짧게 웃었다.
입가에 피가 조금 묻어 있었다.

“항상 그 질문은 사고 난 뒤에 오더라.”

“농담할 상태야?”

“그럼 아직 안 죽었다는 뜻이지.”

그는 천천히 서진을 봤다. 눈빛은 아까와 달랐다. 시험하듯 보던 기색이 사라지고, 대신 아주 선명한 흥미와 경계가 동시에 들어와 있었다.

“너 방금 뭐 했어.”

서진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모르겠어요.”

“거짓말.”

“진짜예요.”

“그럼 더 문제네.”

유란이 낮게 끊어 말했다.
“지금 분석할 시간 없어.”

그녀는 기술자의 제복 안쪽에서 신분패를 꺼냈다.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한재록.
종탑관리국 북부 외곽 정비반.

유란의 표정이 곧바로 바뀌었다.
“이 사람, 그냥 기술자가 아니야.”

“왜요?”

“북부 외곽 정비반이면 제11관측소 폐쇄 이후 잔류 시설 점검까지 맡았을 가능성이 있어.”

단휘가 손등으로 입가 피를 닦았다.
“그럼 이 인간이 거기 다녀온 적 있다는 뜻?”

“높아.”

서진의 심장이 다시 빨라졌다.
“그럼 데려가야죠.”

단휘가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이 짐을?”

“이 사람을 버리면 아까 선택한 의미가 없어져요.”
서진이 곧바로 말했다.

말이 끝난 뒤에야, 자신이 생각보다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음을 깨달았다.

단휘는 몇 초 동안 서진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좋네. 이제 좀 살아 있는 얼굴 하네.”

유란은 곧장 결론을 냈다.
“데려간다. 대신 바로 북서 능선 아래 은폐소로 빠져. 폐선 분기점은 곧 다시 수색 들어올 거야.”

“은폐소?”
서진이 물었다.

단휘가 일어나며 대답했다.
“내가 쓰는 곳.”

“안전해요?”

“전혀.”

“그럼 왜—”

“그래도 지금 죽는 것보단 낫지.”

그 말이 끝나자, 멀리서 다시 공시청 신호음이 울렸다. 이번에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북쪽 검문소에서 하나, 은종 방향에서 하나. 수색망이 넓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유란이 몸을 낮추며 말했다.
“열차 소리 듣고 움직인다. 5분 안에 정리해.”

단휘는 망설임 없이 기술자 한재록을 등에 둘러업었다. 겉보기보다 훨씬 가벼운 몸놀림이었다. 불의 결 사용자는 몸을 먼저 던지는 데 능하지만, 단휘는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있었다. 그는 무게를 드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가장 빨리 성립할 움직임”을 고르는 것처럼 보였다.

서진이 다친 어깨를 움켜쥐자, 유란이 곁으로 와 짧게 말했다.
“보여.”

“괜찮아요.”

“지금은 내가 묻는 거에 짧게 대답해. 팔 들려?”

서진은 이를 악물고 팔을 조금 들어 올렸다. 통증이 찔렀지만 뼈가 나간 건 아닌 듯했다.

유란은 자신의 찢긴 소매 안쪽에서 붕대 천을 뜯어 그의 어깨에 빠르게 감았다. 손끝이 차가웠다.
“깊진 않아. 대신 오늘은 시계 더 오래 열지 마.”

“안 열면?”

“다음엔 누가 죽을지 못 볼 수도 있지.”

그 말은 경고였고, 부탁이기도 했다.

셋은 곧장 철로를 벗어나 북서 능선 아래 좁은 산길로 접어들었다.
뒤에서 폐선 분기점은 다시 고요해지고 있었지만, 그 고요는 잠깐뿐일 것이다. 기록에 없는 열차는 지나갔고, 공시청 기술자는 사라졌고, 분기 장치는 망가졌고, 자신들은 그 한가운데를 통과했다.

서진은 마지막으로 한번 뒤돌아봤다.

붉은 신호등은 아직 켜져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방금 전보다 더 어두워 보였다.
마치 누군가가 그 빛을 멀리서부터 조금씩 지우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 아래 철로 위에, 이번엔 아무도 없었다.


같은 시각, 중앙 공시원 직통 회선

도해율은 보고를 두 번 듣고도 바로 말을 잇지 않았다.

은종 임시봉쇄본부 안은 푸른 조율등이 고정된 채 조용히 울리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회수된 손목시계, 북구역 지도, 하부 수로 구조도, 폐선 분기점 도면이 겹쳐 놓여 있었고, 그 위로 방금 들어온 급보가 펼쳐져 있었다.

“북서 외곽 폐선 분기점 이상 운행 흔적 확인. 종탑관리국 기술자 한재록 실종. 추적 대상 강서진 및 기록보정부 이탈 인원 추정 1명과 접촉 가능성 높음.”

도해율은 문장을 천천히 다시 읽었다.
그리고 맞은편 회선 장치에 손을 얹었다.

“중앙 연결.”

잠시 후, 검은 유리판 너머로 목소리 하나가 흘러나왔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대시정 직속 보좌관의 음성이었다.

“보고.”

도해율은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은종 사건은 단순 조율 붕괴가 아닙니다. 삭제된 출생 기록과 연계된 대상이 회수되지 않았고, 제로 메리디안 계열 열람 키가 외부로 유출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유리판 너머의 침묵은 아주 짧았다.
“확률.”

“높음.”

“대상은.”

“강서진.”

다시 침묵.

도해율은 다음 문장을 더 낮게 말했다.
“그리고 북부 외곽 제11관측소가 재접근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번엔 침묵이 조금 길어졌다.

“제11관측소는 폐쇄되었다.”

“공식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비공식적으로는?”

도해율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답했다.
“아직 죽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유리판 너머에서 아주 작은 잡음이 일었다.
그건 숨소리 같기도 했고, 누군가 의자에 기대는 소리 같기도 했다.

이윽고 목소리가 말했다.
“대시정께 직보된다. 북부 전역 제2봉쇄로 격상. 대상 회수 우선순위는 열람 키, 그다음 생체.”

생체.

그 표현은 곧, 서진을 반드시 살아서 데려올 필요는 없다는 뜻이었다.

도해율은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들었다.
“이해했습니다.”

회선이 끊기고, 유리판이 검게 죽었다.

도해율은 폐선 분기점 도면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북서 능선, 제11관측소 방향을 따라 선을 그었다.

“도망가라.”
그는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래야 더 많은 걸 끌어낼 수 있으니까.”

그 말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방 안 누구도 들을 수 없었다.


북서 능선 아래쪽 산길은 해가 완전히 올라온 뒤에도 차가웠다.

단휘가 앞장서고, 유란이 중간, 서진이 뒤를 따랐다. 단휘의 등에 업힌 한재록은 여전히 의식이 없었지만 간헐적으로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살아 있다. 적어도 아직은.

서진은 걸으면서 계속 한 가지를 생각했다.

어머니는 왜 “혼자 가지 마라”고 했을까.
단순한 안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혼자선 못 열 기록이 있고, 혼자선 못 견딜 장면이 있고, 혼자선 판단이 무너지는 순간이 있으니까.

방금 폐선 분기점에서 자신은 처음으로 그걸 배웠다.

먼저 본다는 건, 먼저 안다는 뜻이 아니다.
먼저 본다는 건, 누구보다 먼저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선택은 언제나 사람을 바꾼다.

멀리 북쪽 하늘 아래, 낮은 구름 사이로 회색 탑 하나의 윤곽이 아주 희미하게 떠올랐다.

유란이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말했다.
“저기.”

서진이 고개를 들었다.

북부 외곽 제11관측소.

아직 한참 멀었지만, 분명 거기 있었다.

폐쇄되었으나 죽지 않은 곳.
윤서가 다음 기록을 남긴 곳.
그리고 공시청이 자신들을 잡기 전에 반드시 먼저 닿아야 하는 곳.

서진은 다친 어깨의 통증을 눌러 삼키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번엔 도망치는 기분만은 아니었다.

누군가 남긴 길을, 자신이 처음으로 제대로 따라가기 시작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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