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창작 소설] 그리니치 오차: 표준시 이전의 너 - 14장 원점으로 가는 다른 길

Ai/Chat GPT|2026. 3. 19.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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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원점으로 가는 다른 길

막사를 떠날 때는 이미 해가 능선 뒤로 절반쯤 잠긴 뒤였다.

북동 사면 아래의 공기는 낮보다 더 빨리 식었다. 낮 동안 돌과 흙에 눌려 있던 냉기가 해가 기울자마자 한꺼번에 올라오는 듯했다. 나뭇가지 끝엔 아직 빛이 남아 있었지만, 바닥 가까운 곳은 벌써 저녁이 먼저 내려앉고 있었다. 멀리 제11관측소 쪽 하늘은 잿빛과 남은 푸른빛이 어색하게 섞여 있었고, 간헐적으로 아주 희미한 진동이 공기를 타고 넘어왔다. 공시 재동조가 시작되었다는 도해율의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민도혁이 앞장섰다.

그가 고른 길은 보급로 본선이 아니었다. 북동 사면을 따라 계속 내려가는 길 대신, 중간에서 동쪽으로 비스듬히 꺾여 숲 안쪽으로 파고드는 얇은 샛길이었다. 처음 보면 짐승길처럼 보였지만, 몇 걸음 더 들어서자 인간이 오간 흔적이 분명해졌다. 잘린 관목, 무너진 돌계단의 모양, 오래된 표식칼 자국. 누군가 정식 경로를 피해서 다니던 길이었다.

“이 길이 원점으로 이어져요?”
서진이 물었다.

민도혁은 앞을 보며 답했다.
“직접은 아니야.”

“그럼 왜—”

“원점으로 가는 길은 한 줄이 아니니까.”
민도혁이 말했다.
“공식 경로는 언제나 감시받는다. 기준점이 있는 곳으로 가려면, 기준점에 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준점 바깥을 오래 걸어 본 사람들의 길을 타야 해.”

그 말은 설명 같기도 했고, 규칙 같기도 했다.
유란은 그걸 듣고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조금 숙였다. 이미 이해한 듯했다.

단휘는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쉽게 말하면 돌아간다는 거지.”

“돌아가는 게 아니라 비껴간다고 해 둬.”
민도혁이 말했다.
“도해율이 원한 건 네가 ‘제시된 길’을 택하는 거였어. 그럼 다음 기준점에서도 저쪽이 준비하고 있겠지.”

서진은 주머니 속 회중시계를 한번 쥐었다.
도해율은 분명 원점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꺼냈다. 그것이 진짜 선택지였든, 자신이 어디까지 생각하는지 시험하려는 유인이었든, 그 사람이 그 말을 던진 순간부터 자신들은 이미 한 번 방향을 흔들린 셈이다.

유란이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지금 필요한 건 빠른 답이 아니라, 저 사람이 왜 ‘직접 안내’하려고 했는지부터 보는 거예요.”

“나도 알아요.”
서진이 말했다.

“알면 다행이고.”

말은 차갑게 했지만, 유란의 목소리엔 이전보다 조금 다른 결이 들어 있었다. 은종을 벗어난 뒤부터 그녀는 계속 사실을 확인하고, 연결하고, 판단하는 쪽에 더 가까웠다. 그러나 막사에서 도해율을 직접 본 뒤로는 거기에 미세한 초조함이 섞였다. 기록으로만 읽던 구조가 눈앞에서 말을 건 순간, 그녀도 완전히 평정할 수는 없게 된 것이다.

한재록은 민도혁이 잘라다 준 나뭇가지를 지팡이처럼 짚고 겨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단휘가 부축하긴 했지만, 속도를 맞추기엔 한계가 있었다. 숨도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한재록 씨.”
유란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괜찮아요?”

“괜찮은 척은… 가능해…”
한재록이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훔치며 말했다.

단휘가 말했다.
“좋네. 오늘 처음으로 쓸모 있는 대답이다.”

한재록은 웃을 기력도 없는지 헛숨만 내쉬었다.

한동안은 말없이 걸었다.

숲 안쪽으로 더 들어갈수록 제11관측소에서 흘러나오던 미세한 진동도 줄어들었다. 대신 완전히 다른 종류의 침묵이 주변을 채웠다. 자연의 고요와는 조금 달랐다. 오래전에 사람의 손길이 끊긴 공간만이 가질 수 있는 침묵. 그러나 그 속에서도 서진은 이 길이 완전히 버려진 적은 없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떤 구간은 너무 오래 비어 있어 흙이 고르게 다져져 있었고, 어떤 구간은 최근에 스친 누군가의 망설임이 얇게 남아 있었다.

“누가 다녔죠?”
그가 물었다.

민도혁이 멈추지 않은 채 답했다.
“예전엔 유지반. 그다음엔 기록 빼돌리는 놈들. 더 나중엔… 살아남은 사람들.”

“살아남은 사람들?”

“관측소에서 나온 뒤로 어디에도 등록되지 못한 인간들.”
민도혁이 말했다.
“공식 길을 타면 바로 잡히는 애들. 기준점 바깥에서만 움직이는 쪽.”

유란의 걸음이 아주 잠깐 느려졌다.
“그럼 이런 길이 하나가 아니겠네요.”

“당연하지.”
민도혁이 말했다.
“세계가 하나의 시계로 맞춰졌다고 믿을수록, 그 바깥으로 비껴난 인간들은 자기들끼리 다른 길을 만들었거든.”

그 말은 이상하게도 위로처럼 들렸다.
표준시는 강제되었고, 공시는 문명처럼 배포되었고, 비용은 승인되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비껴난 사람들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사라지는 대신 길을 남겼다.

서진은 어머니가 남긴 기록들을 떠올렸다.
윤서는 혼자 싸운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적어도 마지막에는 혼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가 지나간 길도 어딘가 이런 식으로, 공식 기록 바깥의 길 위에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잠깐.”
민도혁이 손을 들어 모두를 멈췄다.

앞쪽 숲이 끝나고 작은 절벽 턱이 나타났다. 턱 아래로는 얕은 계곡이 있었고, 계곡 반대편으로 낡은 석교 하나가 걸쳐 있었다. 문제는 그 다리가 거의 반쯤 무너져 있었다는 점이었다. 돌난간은 오래전에 떨어져 나갔고, 발 디딜 만한 판석도 중간부터 끊겨 있었다.

단휘가 한숨처럼 말했다.
“좋네. 역시 다른 길은 늘 멀쩡하지 않지.”

민도혁은 석교 아래쪽을 살폈다.
“아래로 내려가 건널 수도 있는데, 재록 씨 다리로는 무리다.”

“그럼 저걸 건너야 한다는 말이네요.”
유란이 말했다.

“응.”

서진은 석교 너머를 바라봤다. 다리 건너편으로 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바닥엔 너무 희미해서 거의 보이지도 않는 철제 표식 하나가 박혀 있었고, 거기엔 자오선 비슷한 선이 새겨져 있었다. 이 길은 그냥 산길이 아니다. 공식 기준망에서 밀려난 사람들만 쓰던 길이면서도, 동시에 오래전 측량망의 그늘을 따라 놓인 길이다. 원점으로 “공식적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원점이 만든 그림자를 거슬러 가는 길에 더 가까울 것이다.

유란이 물었다.
“다리 상태, 버틸까요.”

민도혁이 대답했다.
“한 명씩, 조심하면.”

단휘가 곧장 말했다.
“내가 먼저.”

그는 한재록을 내려놓고 다리 쪽으로 갔다. 발로 가장자리 판석을 눌러 보고, 중앙부를 한번 가볍게 뛰듯 밟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무너질 것 같진 않아. 대신 중간은 절대 밟지 마.”

“좋아.”
유란이 말했다.
“순서 정하죠.”

“내가 재록 업고 건널게.”
단휘가 말했다.

“제일 위험한 순서잖아.”
유란이 곧바로 반박했다.

“그래도 제일 안정적이야. 난 무너지기 전에 알 수 있으니까.”

그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불의 결 사용자인 단휘는 “아직 시작되지 않은 움직임”을 남들보다 먼저 읽는다. 발밑 돌이 언제 갈라질지, 어느 하중에서 균형이 무너질지 감지할 수 있다면, 이 상황에선 그가 가장 적합하다.

민도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저놈이 먼저 가는 게 제일 낫다.”

결국 단휘가 한재록을 다시 업고 먼저 다리를 건너기로 했다.

서진은 숨을 죽인 채 그걸 지켜봤다.

첫걸음.
둘째.
셋째.

다리는 삐걱거리지 않았다. 대신 아주 낮게 안쪽에서 돌끼리 마찰하는 소리가 났다. 오래된 구조물이 “아직 버틴다”는 식으로 내는 소리였다. 단휘는 속도를 내지 않고, 그러나 전혀 망설이지도 않은 채 걸었다. 중간쯤 갔을 때 한재록이 통증 때문에 작게 신음했고, 그 순간 다리 한쪽 끝에서 작은 파편이 떨어져 내렸다.

서진의 심장이 철렁했지만, 단휘는 이미 다음 발을 옮긴 뒤였다.

“됐어.”
민도혁이 낮게 말했다.

단휘가 반대편에 도착해 한재록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제야 유란이 먼저 움직였다. 그녀는 빠르진 않았지만 아주 정확하게 단휘가 밟은 자리만 따라 걸었다. 다리를 건너는 동안에도 그녀의 시선은 발밑만이 아니라 주변 돌벽과 표식들을 훑고 있었다. 길 위 정보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의 눈이었다.

유란이 반대편에 닿고, 민도혁이 그다음, 마지막으로 서진 차례가 되었다.

그가 첫발을 올리는 순간, 회중시계가 미세하게 떨렸다.

서진은 멈칫했다.

“뭐야?”
단휘가 반대편에서 물었다.

서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다리 중간, 정확히 중앙이 아니라 끊긴 판석 바로 앞쪽에 서 있는 장면이 스쳤다.
자신이 아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다.
등을 보인 채 서 있고, 발아래 다리가 아니라 어떤 선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

“여기서부터는 기준을 들고 건너지 마.”

장면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유란이 반대편에서 날카롭게 말했다.
“서진.”

그는 겨우 정신을 붙잡았다.
“잠깐… 시계가…”

“지금 열지 마.”
유란이 바로 말했다.
“그대로 와.”

서진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움직였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끊긴 판석 앞을 지날 때, 그는 일부러 바닥을 보지 않았다. 방금 본 장면이 “과거 누군가 이 길을 건너던 순간”일 수도 있고, “지금 이 길이 요구하는 경고”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지금은 확인보다 통과가 먼저다.

무사히 반대편에 닿았을 때, 유란이 가장 먼저 물었다.
“뭐 봤어요.”

서진은 짧게 말했다.
“누군가 여기서 멈춘 장면. 기준을 들고 건너지 말라고 했어요.”

민도혁의 표정이 바뀌었다.
“기준을 들고 건너지 말라…”

“아는 말이에요?”
유란이 물었다.

민도혁은 다리 뒤편 표식을 한번 돌아보더니 낮게 말했다.
“이 길은 옛 기준 보정선이야. 공식 시계나 측정 장치가 강하게 반응하면 오히려 길이 꼬일 수 있다는 얘길 들은 적 있어.”

단휘가 코웃음을 쳤다.
“그걸 이제 말하냐.”

“나도 방금 기억났다.”

유란은 서진 손의 회중시계를 봤다.
“다음부터는 이런 경고 나오면 바로 말해요.”

“네.”

“근데 시계를 버리라는 말은 아니었죠?”

“아니요. ‘기준을 들고 건너지 말라’였어요.”

잠깐 정적.

그 말은 단순히 물건을 뜻하지 않을 수도 있다.
표준시 장치, 공시 기준, 혹은 누군가가 미리 제시한 답안 자체를 말하는 걸 수도 있다.
지금 이 길 전체가 “기준을 잠시 내려놓고만 통과할 수 있는 경로”일 가능성이 있다.

유란이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다른 길이라는 게, 진짜로 다른 논리를 요구하는군.”


석교를 건넌 뒤 길은 더 뚜렷해졌다.

숲은 옅어지고, 대신 낮은 바위지대와 마른 풀밭이 이어졌다. 멀리 북동쪽 평야 가장자리에 작은 마을 불빛들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닿으려면 한참 멀었지만, 적어도 더 이상 관측소 바로 아래는 아니라는 뜻이다.

민도혁은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잠시 더 걸어 두자고 했다.
“조금만 더 가면 바람막이 되는 바위 틈이 있어. 거기서 밤을 넘기는 게 낫다.”

단휘는 한재록 상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유란도 반대하지 않았다.

서진은 걷는 동안 자꾸 도해율의 말을 떠올렸다.

원점으로 가는 길은 그와 함께 가는 방법이 있었고, 지금 자신들은 그걸 거절하고 다른 길을 택했다. 하지만 정말로 “다른 길”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이것조차 결국 도해율이 예상한 범위 안일까.

그 생각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회중시계가 더 조용해졌다.
마치 지금은 질문보다 걷는 게 먼저라는 듯이.

해가 완전히 넘어갈 무렵, 민도혁이 말한 바위 틈에 도착했다. 낮은 바위벽 둘이 ㄱ자로 맞물린 틈이라 바람을 어느 정도 막아 줬고, 안쪽은 생각보다 넓었다. 짐을 내려놓고 한재록을 눕히자 모두가 눈에 띄게 지쳐 보였다.

유란은 남은 약을 조금 더 나눠 썼고, 단휘는 바깥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 왔다. 불은 피우지 않았지만, 앉을 자리 정도는 정리할 수 있었다. 민도혁은 바깥쪽 경사면을 한 바퀴 돌며 흔적을 살폈다.

서진은 바위벽에 기대 앉아 윤서의 음성 조각을 떠올렸다.

기록보다 먼저 죽으면, 남는 건 시간이 아니라 질문이다.
서진에게 묻지 말고 보여 줘.

윤서는 그 말로 무엇을 뜻했을까.
질문으로는 무결인을 읽을 수 없다고 했고, 관측소는 질문을 던졌고, 자신은 거기에 “나는 하나가 아니야”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제 더 깊이 갈수록 질문보다 길과 장면과 흔적이 자신을 이끌고 있다.

그건 어쩌면, 자신이 정답을 말하는 방식이 아니라 “직접 보게 되는 방식”으로만 다음 문을 열 수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유란이 조용히 다가와 앉았다.

“아까 다리에서.”
그녀가 말했다.
“그 장면, 누군지 알 것 같았어요?”

“아니요.”
서진이 고개를 저었다.
“근데… 익숙했어요.”

“익숙하다는 건.”

“처음 보는 장면 같지 않았어요. 마치… 누군가 오래전에 여기서 같은 선택을 한 적 있는 것처럼.”

유란은 그 말을 곱씹듯 잠깐 침묵했다.

“윤서일 수도 있겠네요.”

서진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가능하다.
어머니가 이 길을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보다 더 이전에, 기준점 바깥의 길을 만들던 누군가일 수도 있다.

“도해율 말.”
유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 믿어요?”

“안 믿어요.”
서진이 바로 말했다.

유란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근데 거짓말만 한 것도 아닌 것 같아요.”

“응. 그게 더 위험하죠.”

두 사람은 잠깐 같은 방향을 보았다.
바위 틈 바깥, 북동 평야 쪽 어둠.

유란이 낮게 말했다.
“원점은 가야 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서진은 그녀를 봤다.

“근데 도해율이 열어 둔 문으로는 안 돼요.”
유란이 이어 말했다.
“저 사람은 길을 안내하는 척하지만, 결국 ‘그 사람이 원하는 상태의 서진’이 거기 도착하는 걸 보고 싶은 거예요.”

“내가 무너지든, 안 무너지든.”

“네.”
유란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 사람한텐 둘 다 결과일 뿐이죠.”

단휘가 바깥에서 들어오며 둘의 마지막 말을 들었다.
“좋네. 드디어 셋 다 같은 생각이네.”

그는 바위벽 아래 털썩 앉으며 말했다.
“난 처음부터 저 인간 맘에 안 들었어.”

“그건 누구나 그래.”
유란이 말했다.

단휘는 서진을 한번 보더니 낮게 물었다.
“그래도 가겠지?”

“원점으로요?”
서진이 되물었다.

“응.”

서진은 잠깐 생각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가야 해요.”

단휘는 더 묻지 않았다.
그 대답이면 충분하다는 듯이.

바로 그때, 민도혁이 바깥에서 돌아왔다.
표정이 좋지 않았다.

“뭐죠.”
유란이 물었다.

민도혁은 안쪽으로 들어오며 낮게 말했다.
“우릴 쫓아온 건 없는데, 앞쪽 마을 쪽이 이상해.”

“어떻게요.”

“공시 재동조 신호가 너무 촘촘해.”
민도혁이 말했다.
“보통 저 정도면 봉쇄보다 ‘검색’에 가까워.”

서진의 눈빛이 굳었다.
“사람을 찾는 게 아니라…”

“반응을 찾는 거지.”
민도혁이 말을 이었다.
“기준 밖으로 밀려난 리듬이나, 기준점 바깥 경로를 타는 흔적을.”

유란이 바로 결론을 냈다.
“그럼 마을로 못 들어가요.”

“응.”
민도혁이 말했다.
“근데 마을을 비껴 가는 길이 하나 더 있어.”

단휘가 짧게 웃었다.
“오늘만 벌써 몇 번째 ‘다른 길’이냐.”

민도혁도 희미하게 웃었다.
“원점으로 가려면 아직 많이 배워야지.”

그 말에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길은 하나가 아니고, 기준도 하나가 아니고, 질문도 하나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세계는 모든 걸 하나로 맞추려 했지만, 정작 살아남은 건 늘 비껴난 쪽의 길들이었다.

서진은 밤이 완전히 내려오기 전 마지막 남은 하늘빛을 바라봤다.

원점으로 가는 다른 길.
그건 단순한 우회로가 아니다.
누군가가 정한 질문과 기준을 그대로 밟지 않기 위해, 버려진 사람들과 밀려난 시간들과 남겨진 기록들이 만들어 낸 길이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은 이제야 비로소 그 길의 첫 입구를 제대로 밟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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