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창작 소설] 그리니치 오차: 표준시 이전의 너 - 12장 도해율

Ai/Chat GPT|2026. 3. 1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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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도해율

북동 사면 아래의 바람은 이상하게 건조했다.

제11관측소 아래 폐갱도와 통로를 빠져나왔는데도, 서진은 아직 돌먼지 냄새가 폐 안쪽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바깥 공기를 마시면 나아져야 할 텐데 오히려 반대였다. 산의 찬 공기와 늦은 오후 햇빛이 몸을 스치는데도, 관측소 아래에서 읽은 문장과 들은 목소리와 본 장면들이 자꾸 피부 안쪽에 들러붙는 느낌이었다.

다섯 사람은 북동 사면을 따라 이어진 오래된 보급로를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민도혁이 앞장서고, 그 뒤를 단휘와 한재록이 따랐고, 유란과 서진이 가장 뒤에 섰다. 보급로라 해도 거의 길의 형태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한쪽은 급한 경사면, 다른 쪽은 낮은 숲으로 떨어졌고, 중간중간 무너진 석축과 녹슨 말뚝이 드문드문 박혀 있었다. 어쩌면 예전엔 관측소 물자를 올리던 짐마차가 다녔을 길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누구도 쓰지 않는 길 같았지만, 완전히 죽은 길은 아니었다.
그건 서진이 가장 잘 알 수 있었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은 이렇게 “결”이 남지 않는다.

“뒤쪽 반응.”
유란이 낮게 말했다.

서진도 멈춰 섰다.
“느껴졌어요?”

유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아니에요. 기록 흔적 쪽.”

민도혁이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폐기 경로에서 흘러나온 잔류가 이쪽 사면까지 타고 내려올 때가 있어. 해 지기 전엔 보통 약한데…”

그 말끝이 흐려졌다.

단휘가 물었다.
“근데?”

민도혁이 멈춰 서서 숲 아래쪽을 봤다.
“오늘은 약하지 않네.”

서진도 그쪽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없다고 하기엔 너무 또렷하게 “무언가 지나간다”는 감각이 있었다. 풀잎이 흔들리는 방향도, 그림자의 번짐도, 발소리도 아닌데 누군가가 이쪽을 향해 접근하는 기척만은 분명했다. 관측소에서 보았던 잔류체와는 조금 달랐다. 그건 잘려 나온 장면의 반복에 가까웠다면, 지금 숲 아래에 있는 것은 “누군가의 시선이 먼저 도착한 흔적”에 더 가까웠다.

서진의 손이 주머니 속 회중시계를 감쌌다.
차갑다.
그러나 완전히 침묵하고 있진 않았다.

유란이 아주 작게 말했다.
“이건 잔류보다 추적 쪽이에요.”

“도해율?”
서진이 물었다.

유란은 몇 초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주 천천히 말했다.

“직접은 아닐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 사람 쪽에서 흘린 리듬 같아요.”

단휘가 코웃음을 쳤다.
“리듬까지 읽냐.”

“직업병이에요.”

“좋네. 이제 우릴 쫓는 방식도 취향별로 구분하네.”

유란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서진을 보며 낮게 덧붙였다.
“조심해야 해요. 저 사람은 단순히 발자국을 쫓는 타입이 아니에요. 이미 우리가 어떤 질문을 따라 움직이는지 읽고 있을 수도 있어요.”

그 말은 서진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일 가능성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은종 봉쇄.
제분소.
북측 제7수문.
북서 외곽 폐선 분기점.
제11관측소.
그리고 그 아래 설계실.

지금까지 자신들은 계속 먼저 움직였다고 생각했지만, 혹시 정말 그랬을까.
윤서의 기록이 길을 열어 주었고, 회중시계가 반응했고, 자신들은 그 흔적을 따라왔다. 그러나 동시에 공시청도 이상할 정도로 정확하게 가까워졌다. 단순 추적이라기엔 너무 빠르고, 우연이라기엔 너무 정확하다.

“우릴 유도하고 있다는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서진이 말했다.

민도혁이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걸음을 늦췄다.
“지금 그 생각까지 왔나.”

“맞아요?”

민도혁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앞쪽 낮은 숲 아래 움푹 꺼진 공터를 가리켰다.

“일단 내려가. 거기서 얘기하지.”


공터는 원래 보급 중계지였던 곳 같았다.

낮은 돌담이 반원형으로 둘러져 있었고, 가운데엔 무너진 천막 기둥과 부식된 쇠고리들이 남아 있었다. 숲과 사면 사이에 파묻히듯 자리 잡고 있어 위쪽 길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숨어서 쉬기엔 나쁘지 않은 자리였다. 민도혁은 바깥쪽을 한 번 훑어본 뒤에야 한재록을 돌담 안에 기대앉혔다.

한재록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폐선 분기점에서 다친 다리는 시간이 갈수록 더 굳고 있었고, 열도 오르기 시작한 듯 보였다. 유란이 급히 맥을 짚고 눈꺼풀을 확인했다.

“열 올라요.”

단휘가 짧게 말했다.
“지금 멈추면 안 되는데.”

“알아요.”
유란이 대답했다.
“근데 계속 걸리면 진짜 못 버텨요.”

민도혁이 주변 가방을 뒤지다가 낡은 약포 하나를 꺼냈다.
“해열 들어간 건 아니고, 통증이랑 염증 쪽 조금 누를 수는 있어.”

유란이 받아 냄새를 맡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쓸게요.”

서진은 돌담 가장자리에서 숲 아래쪽을 계속 보고 있었다. 아까 느꼈던 기척은 지금은 더 멀어졌지만,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누군가 직접 따라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느 방향을 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시선 같은 것이 얇게 남아 있었다.

민도혁이 그를 봤다.
“계속 느껴지나.”

“네.”

“그럼 아직 가까운 거다.”

“도해율이요?”

민도혁은 이번엔 더 오래 침묵했다.
그리고 마침내 말했다.

“도해율 같은 놈들은 직접 앞에 안 나타나도 돼. 이미 네가 어디를 향할지 계산하고 있으면, 그건 절반은 따라붙은 거니까.”

단휘가 돌담에 기대앉으며 말했다.
“계속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말하지 말고, 알고 있는 걸 제대로 말해.”

민도혁은 그를 한번 봤다가, 결국 숨을 내쉬었다.

“좋아. 그럼 단순하게 말하지. 도씨 계열이 오면, 현장은 보통 둘 중 하나였어. 하나는 제거. 다른 하나는 확인.”

“확인은 뭘.”
유란이 물었다.

“대상이 진짜 그 층까지 닿을 수 있는지.”
민도혁이 말했다.
“관측소 아래 설계실, 혹은 그보다 더 아래. 거기까지.”

서진은 조용히 물었다.
“그럼 저를 살려 두는 이유는.”

“죽이면 끝나니까.”

너무 단순한 대답이었는데, 그래서 더 무거웠다.

민도혁은 말을 이었다.
“넌 회중시계를 들고 있고, 무결 반응을 보였고, 기준면 아래 문까지 열었지. 설계층 기록도 봤고. 그런 대상을 현장에서 그냥 죽여 버리면, 그 아래층이 다시 닫혀 버릴 수도 있어. 혹은 다음 열람 조건이 훨씬 더 까다로워질 수도 있고.”

유란이 낮게 말했다.
“그러니까 도해율은 서진을 제거하는 대신 따라붙는 거군요.”

“따라붙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걸 수도 있지.”
민도혁이 말했다.
“어디까지 가는지.”

단휘가 얼굴을 찌푸렸다.
“기분 더럽네.”

서진은 한 가지를 더 물었다.
“그럼 왜 은종에선 회수 명령이 내려왔을까요. 열람 키 우선, 생체는 그다음이라고 했잖아요.”

유란이 그 질문을 이어받았다.
“맞아요. 그건 살아서 꼭 필요하다는 태도는 아니었어요.”

민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두 층의 명령이 섞인 거지. 현장 집행국은 위험 요소를 줄이고 싶어 하고, 더 위는 열람을 확인하고 싶어 해. 둘 다 맞물리면 보통 저런 명령이 나와. 열람 키 회수 우선, 생체는 가능하면 회수. 불가능하면 제거.”

“결국 언젠가는 죽인다는 뜻이네요.”
단휘가 말했다.

“필요가 끝나면 그렇겠지.”

그 말이 떨어진 뒤, 공터 안은 조용해졌다.

유란은 한재록의 상처를 묶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휘도 평소처럼 투덜대지 않았다. 서진은 그 침묵이 무서웠다. 적이 거대하거나 강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정리된 구조여서. 누군가는 설계했고, 누군가는 운영했고, 누군가는 확인했고, 누군가는 비용을 승인했다. 자신은 이제 겨우 그 구조의 가장 아래쪽 층을 밟았을 뿐이다.

그때, 한재록이 낮게 신음했다.

유란이 몸을 기울였다.
“재록 씨. 들리면 말해요.”

한재록은 눈을 반쯤 떴다. 초점이 흐렸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그는 힘겹게 서진을 보더니, 뜻밖에도 물었다.

“문… 열었어?”

서진은 잠시 멈췄다가 대답했다.
“네. 기준면 아래 문이요.”

한재록은 그 말을 듣고 눈을 감았다 떴다.
안도인지, 체념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럼… 저쪽도 알겠네…”

유란이 재빨리 물었다.
“저쪽이 누구죠.”

한재록은 대답보다 숨을 고르는 게 먼저인 듯했다. 유란이 물을 조금 먹였고, 그는 겨우 입술을 적신 뒤 말했다.

“상층 기록에… 직접 이름은 없었어… 근데 코드가 있었지…”

“무슨 코드.”

“‘D-0’…”

서진의 눈빛이 굳었다.
유란도 바로 반응했다.
“D?”

한재록은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씨인지, 다른 뜻인진 몰라… 근데 D-0 열람이 붙은 문서는… 보통 폐기 직전 아니면 못 봐…”

단휘가 말했다.
“0이면 뭐냐. 최초?”

“원점…”
한재록이 중얼거렸다.
“기준점 쪽…”

원점.

서진은 그 단어가 뼛속까지 차갑게 들어오는 걸 느꼈다.
도해율.
도씨 계열.
D-0.
원점, 기준점, 자오선, 승인된 기원.

이 모든 게 우연일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D-0가 사람일 수도 있나요?”
서진이 물었다.

한재록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사람… 이라기보다… 자리일 수도…”

민도혁이 아주 낮게 중얼거렸다.
“기준점 관리자.”

유란이 바로 그를 봤다.
“뭔가 아는 표정이네요.”

민도혁은 대답하지 않다가, 결국 말했다.
“예전에 한 번, 유지반 회의에서 들은 적 있어. 상층 검토 인원 중 제일 위에 있는 자리는 이름보다 코드로 부른다고. 사람이 바뀌어도 자리는 남는다고.”

“D-0.”
유란이 되뇌었다.

“응. 도해율이 직접 그 자리인지, 그 계열인지는 모르지. 근데 멀진 않을 거다.”

서진은 돌담 바깥 나무 그림자를 봤다.
지금까지 자신은 도해율을 한 명의 추적자로 생각했다. 차갑고 정확하고 위험한 사람. 그런데 그가 개인이라기보다 “자리”와 더 가까운 존재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러면 자신이 맞서야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누군가 계속 이어받아 온 기준점 관리 체계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순간, 회중시계가 또 한 번 떨렸다.

이번엔 짧지 않았다.
금속이 손안에서 맥박처럼 세 번 크게 뛰었다.

서진은 주저하지 않고 시계를 열었다.

유란이 즉시 가까이 왔다.
“뭐 보여요?”

안쪽 금속면에 문장은 없었다.
대신 아주 희미한 선이 하나 나타났다.
길처럼 보였다.
북동 사면을 따라 더 내려가는 선.
그리고 그 끝, 조그만 사각형 표시.

민도혁이 그걸 보고 눈을 좁혔다.
“옛 측량막사.”

“측량막사?”
단휘가 물었다.

“북동 사면 끝자락에 하나 있어. 예전엔 관측소 외곽 기준점 재던 곳이지. 지금은 다 무너졌을 텐데…”

유란이 물었다.
“왜 거길 보여 주지.”

서진은 시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모르겠어요. 근데 길을 따라가면… 뭔가 더 있어요.”

“뭔가가 아니라, 누군가가 있겠지.”
단휘가 말했다.

민도혁은 조금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성 높아. 측량막사는 상층 인원이 외부랑 직접 안 섞고 잠깐 대기할 때 쓰던 곳이기도 했어.”

“도해율.”
유란이 낮게 말했다.

서진은 시계를 닫지 못한 채 멈췄다.

정말로 저쪽에 도해율이 있을까.
혹은 그와 닿은 흔적이.
이건 함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신들이 걸어온 길 대부분도 결국 함정과 단서가 한 몸이었다. 윤서의 기록도, 제11관측소도, 봉인실도, 설계실도 모두 위험했고 동시에 진실이었다.

유란이 먼저 말했다.
“가야 해요.”

단휘가 곧장 물었다.
“확실해?”

“아니요.”
유란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도 가야 해요. 지금 우리한테 필요한 건 더 많은 도주가 아니라, 저 사람이 뭘 확인하려 하는지 거꾸로 확인하는 거예요.”

민도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측량막사는 나도 알아. 밤 되기 전에 닿을 수 있어.”

단휘는 짧게 웃었다.
“좋아. 이젠 진짜 추격전이 아니라 역추적이네.”

서진은 말없이 회중시계를 닫았다.

묻지 말고 보여 줘.
윤서의 음성이 다시 떠올랐다.

지금 이 길도 마찬가지인지 모른다. 질문을 던지는 대신, 직접 보게 만드는 길. 자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누가 자신을 보고 있는지, 왜 아직 죽이지 않았는지. 그 답이 측량막사에 있을 수도 있다.

공터 위로 바람이 다시 한번 지나갔다.

북동 사면 아래로 길게 드리운 나무 그림자는 이미 저녁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시간은 여전히 흐르는 척하고 있지만, 서진에게는 이제 분명했다.
자신들이 움직이는 건 단순한 시각이 아니라, 누군가 정한 질문의 궤도 안쪽과 바깥쪽이다.

그리고 그 궤도를 처음으로 거꾸로 밟기 시작한 순간,
도해율이라는 이름도 더 이상 단순한 추적자가 아니게 되었다.

그는 아마, 다음 길목에 이미 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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