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창작 소설] 그리니치 오차: 표준시 이전의 너 - 6장 관측이 다시 시작될 때
6장
관측이 다시 시작될 때
제11관측소로 올라가는 길은 길이라고 부르기 어려웠다.
능선 아래 은폐소를 떠난 뒤부터는 누군가 정식으로 닦아 놓은 등산로가 아니라, 오래전 보급 인력과 정비반이 억지로 다니며 눌러 놓은 흔적에 가까웠다. 바위와 바위 사이를 타고 올라가야 했고, 군데군데 무너진 계단은 흙에 절반쯤 파묻혀 있었다. 나무뿌리가 돌 틈을 밀어 올린 자리마다 발을 잘못 디디면 바로 미끄러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길은 끝까지 남아 있었다.
관측소가 폐쇄된 지 오래되었다면 이런 길은 이미 자연에 먹혀 버려야 했다. 그런데 제11관측소로 향하는 길은, 무너졌어도 끊기지 않았다. 누군가 계속 오르내렸던 것처럼. 또는 적어도, 완전히 버려진 적은 없는 것처럼.
단휘가 한재록을 다시 업은 채 앞에서 올라갔다.
유란은 중간에서 주변 흔적을 살피며 걸었고, 서진은 맨 뒤에서 회중시계를 쥔 손을 주머니 안에 넣은 채 따라올랐다.
해가 완전히 올랐는데도 공기는 차가웠다.
제11관측소가 가까워질수록, 주변 소리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새가 울지 않았고, 바람도 나뭇잎을 크게 흔들지 않았다. 그 고요가 평온해서가 아니라 지나치게 정리된 것처럼 느껴졌다. 소리마저 관측용으로 제거된 공간에 가까웠다.
유란이 낮게 말했다.
“들어가면 말 수 줄여.”
단휘가 대꾸했다.
“원래 많지도 않아.”
“너 말고.”
서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관측소 정상부가 보일 때부터 계속 묘한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어깨 통증과는 다른 감각이었다.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아주 오래전에 맞춰 놓은 초점을, 이제야 다시 맞추는 느낌. 사람의 시선이라기보다, 장치의 시선에 가까운 압박. 아직 문도 열지 않았는데 이미 관측당하고 있다는 감각이 들었다.
능선 마지막 굽이를 돌자, 제11관측소 전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까이서 본 관측소는 멀리서보다 더 기괴했다.
기본 구조는 천문 관측소와 닮아 있었다. 중앙의 둥근 관측 돔, 좌우로 길게 뻗은 석조 동, 후면의 낮은 연결복도. 하지만 세부는 달랐다. 창문 수가 유난히 적었고, 외벽엔 별자리 문양 대신 촘촘한 눈금과 자오선 표시가 새겨져 있었다. 일부 문양은 칼로 긁어낸 듯 지워져 있었지만, 그 아래 원래 새겨진 선들이 아직 남아 있었다. 입구 위 금속 패에는 희미하게 읽히는 글자가 있었다.
북부 관측 제11소
공시 적합성 측정구역
서진은 그 글자를 읽고 미간을 찌푸렸다.
천문대가 아니라, 처음부터 “공시 적합성 측정구역”이었다.
유란도 그 문구를 확인한 뒤 낮게 중얼거렸다.
“관측소가 아니라 시험장이었네.”
한재록이 등 뒤에서 아주 낮게 신음했다.
단휘가 말했다.
“살아 있는 동안 들여보내긴 해야겠지.”
정문은 잠겨 있었다.
정확히는, 한 번 닫힌 뒤 다시 여는 걸 전제하지 않은 방식으로 봉인되어 있었다. 바깥 걸쇠가 아니라 안쪽 압력 고정식 장치. 공시청 시설에서 폐쇄 구역에 쓰는 방식이다.
유란이 봉인 틈을 살피다가 고개를 저었다.
“정면은 시간 걸려.”
단휘가 이미 옆 담장 쪽을 보고 있었다.
“뒤.”
관측소 후면의 낮은 연결복도 일부가 무너져 있었다.
돌담 절반이 내려앉은 틈으로 내부에 접근할 수 있을 듯했다.
셋은 곧장 후면으로 돌아갔다. 뒷벽 가까이 가자 서진은 이유 없이 숨을 죽였다. 주변이 너무 조용했다.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면 이런 정적일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 기척은 없었다. 그 대신 연결복도 붕괴 틈 안쪽에서 아주 미세한 금속 진동이 들렸다. 멈춘 시계를 귀 가까이 대었을 때 나는 소리와 닮아 있었다.
단휘가 먼저 몸을 낮춰 틈 안을 들여다봤다.
“비었어.”
“함정일 수도 있어.”
유란이 말했다.
“그럼 이미 늦었지.”
그는 한재록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먼저 틈 안으로 들어갔다. 유란이 뒤따르고, 서진이 마지막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관측소 내부 공기는 바깥보다 더 차가웠다.
먼지는 많았지만 썩은 냄새는 거의 없었다. 습도도 예상보다 낮았다. 장기간 방치된 건물이 아니라, 최소한 온도와 밀폐 상태는 어딘가에서 유지되고 있는 공간 같았다. 복도 바닥엔 깨진 유리와 종이 부스러기가 흩어져 있었고, 벽에는 검은 판과 금속 눈금판이 군데군데 걸려 있었다. 그중 몇 개에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0.3초
1.8초
7분
불일치 유지
서진은 걸음을 멈췄다.
벽면 기록판 하나에 검은 잉크로 적힌 문장이 있었다.
“개체는 공시 이전 장면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바깥에 남은 잔여 시간을 ‘감각’한다.”
유란도 그 문장을 봤다.
그리고 얼굴이 굳었다.
“연구 기록이네.”
“인간 대상으로?”
서진이 물었다.
“응. 그것도 아주 노골적으로.”
단휘는 복도 끝을 살피며 말했다.
“읽는 건 나중에.”
그는 늘 이렇게 말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이 틀린 적은 드물었다.
후면 연결복도를 지나자 내부는 세 갈래로 나뉘었다.
왼쪽은 기록실로 보이는 방.
오른쪽은 좁고 긴 계단실.
정면은 둥근 천장 아래 이어지는 중앙 관측홀.
그 중앙 관측홀을 본 순간, 서진은 이유 없이 멈췄다.
한가운데 바닥에 거대한 원형 눈금이 새겨져 있었고, 그 위로 금속 의자 비슷한 것이 여러 대 놓여 있었다. 천장 돔은 반쯤 열려 있었지만, 하늘을 보기 위한 각도가 아니었다. 별을 추적하는 천문 장치라기보다, 안쪽 의자에 앉은 사람의 머리 위로 정확한 각도의 빛을 떨어뜨리기 위한 구조였다. 의자 주변에는 손목 고정대, 머리 받침대, 시보용 음향관이 설치되어 있었다.
천문대가 아니다.
사람을 앉혀 두고 시간을 맞추는 장소다.
유란이 아주 낮게 말했다.
“미친.”
단휘도 이번엔 대꾸하지 않았다.
서진은 관측홀 바닥 가까이 다가갔다. 원형 눈금 가장자리엔 이름이 아니라 번호와 수치만 적혀 있었다.
개체 04 — 물 결
개체 11 — 철 결
개체 19 — 미닫힘
개체 21 — 분류 보류
분류 보류.
그 단어를 보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여기서 사람을… 맞춘 거예요?”
서진이 거의 속삭이듯 물었다.
유란이 대답했다.
“아니. 맞추려 한 거지. 성공했는지는 별개고.”
한재록이 뒤쪽에서 낮게 신음했다.
단휘가 그를 벽가에 눕힌 뒤 말했다.
“빠르게 찾자. 오래 있으면 안 돼.”
서진은 그제야 움직였다.
어머니가 남긴 두 번째 기록은 “잔여 관측실”에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중앙 관측홀은 아니다. 여긴 너무 노골적이다. 주 관측 구역일 가능성이 높다. 잔여 관측실이라면 주 기능이 끝난 뒤 남은 작은 방, 혹은 폐쇄 과정에서 완전히 비워지지 않은 부속실일 것이다.
유란도 같은 판단을 한 듯 왼쪽 기록실 쪽으로 향했다.
“잔여 관측실이면 주홀 바로 옆이 아니라 보조실일 가능성이 커.”
단휘는 계단실 쪽을 보며 말했다.
“위로 가면?”
“돔 위쪽은 오히려 주 관측부일 거야.”
유란이 대답했다.
“남은 곳부터 확인하자.”
기록실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안쪽엔 금속 서랍과 낮은 기록대가 줄지어 있었고, 천장까지 닿는 선반 절반은 비어 있었다. 문서 대부분은 반출된 듯했지만, 급하게 비운 흔적이 분명했다. 어떤 서랍은 열린 채였고, 바닥엔 찢긴 색인표와 유리필름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서진이 방 안으로 발을 들이자, 회중시계가 다시 떨렸다.
틱.
아주 가볍게.
그는 즉시 숨을 죽였다.
유란도 반응을 봤다.
“어디.”
서진은 천천히 시계 방향을 돌렸다.
진동은 방 전체에서 오는 게 아니라, 왼쪽 벽 뒤쪽을 향할수록 미세하게 강해졌다.
“저쪽.”
그는 가장 안쪽 벽면을 가리켰다. 거기엔 다른 선반과 달리 비어 있는 금속 프레임이 하나 걸려 있었다. 원래는 큰 기록판이 있었던 자리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떼어낸 흔적만 남아 있었다.
유란이 가까이 가서 손끝으로 프레임 가장자리를 더듬었다.
“안쪽에 틈 있어.”
단휘가 다가와 말했다.
“밀면 되냐.”
“기다려.”
유란은 프레임 한쪽에 남은 작은 눈금을 살폈다.
0, 3, 7, 11.
서진은 그 숫자를 보는 순간 어깨가 굳었다.
7분.
11관측소.
우연치곤 너무 노골적이다.
유란이 낮게 말했다.
“조합식이야.”
“뭐로.”
단휘가 물었다.
“오차값.”
유란이 손가락을 눈금 7에 올렸다가, 잠시 망설인 뒤 11 쪽으로 미끄러뜨렸다.
프레임 안쪽에서 금속 걸쇠 풀리는 소리가 났다.
딸깍.
벽 한쪽이 아주 조금 안으로 밀렸다.
안쪽엔 좁은 방이 있었다.
창은 없고, 천장은 낮고, 먼지는 적었다.
방 한가운데엔 관측 의자 하나가 남아 있었고, 벽면에는 작은 원형 창처럼 생긴 관측공이 있었다. 그러나 그 구멍은 하늘이 아니라 바깥 산비탈 쪽을 향하고 있었다.
서진은 그걸 보자마자 알았다.
이 방은 별을 보는 방이 아니다.
사람이 관측 대상이 될 때, 바깥 세계와의 시간 차이를 측정하기 위한 보조실이다.
그리고 의자 옆 작은 탁자 위에, 금속 케이스 하나가 놓여 있었다.
회중시계가 더 세게 떨렸다.
“저거예요.”
서진이 말했다.
그가 다가가 케이스를 잡으려는 순간, 방 바닥에 그려진 원형 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주 희미한 붉은 선. 누군가 피가 아니라 붉은 잉크로, 혹은 빛이 닳아 남긴 자국처럼 남겨 놓은 원이었다.
유란이 즉시 손을 뻗어 그를 막았다.
“잠깐.”
“왜요.”
“저건 관측 경계선일 가능성이 있어.”
단휘가 인상을 찌푸렸다.
“넘으면 뭐가 생기는데.”
“기록이 열리거나, 반대로 봉인이 깨지거나.”
“둘 중 하나면 결국 넘어야 하네.”
“그래도 알아보고.”
서진은 원형 경계선 바깥에서 금속 케이스를 바라봤다. 윤서가 남긴 기록이라면, 함정이 있을 가능성보다 “특정 조건에서만 열리게 해 뒀다”는 쪽이 더 자연스럽다. 문제는 그 조건이 자신일지, 회중시계일지, 혹은 둘 다인지였다.
그는 회중시계를 꺼내 들었다.
이번엔 유란도 말리지 않았다.
뚜껑을 열자, 케이스 표면의 희미한 문양이 드러났다. 별 다섯 개 중 세 개가 지워져 있었다. 그리고 아주 작은 글씨가 떠올랐다.
“경계선을 넘지 말 것. 시계를 먼저 들일 것.”
단휘가 코웃음쳤다.
“친절하네.”
유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윤서답지.”
서진은 몸을 숙여 경계선 바깥에서 회중시계만 케이스 쪽으로 뻗었다. 금속과 금속이 가까워지자, 둘 사이 공기가 아주 얇게 떨렸다. 다음 순간 케이스 윗면이 스스로 열렸다.
안에는 두 번째 기록지와, 아주 작은 유리병 하나가 들어 있었다.
유리병 안엔 회색 가루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저건 뭐죠.”
서진이 묻자, 유란이 얼굴을 굳혔다.
“반응 재.”
“재?”
“시간 반응체를 태우고 남은 찌꺼기일 수도 있어. 혹은…”
그녀는 말을 끝내지 않았다.
서진은 기록지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첫 번째보다 훨씬 얇았다.
겉면엔 한 줄만 적혀 있었다.
“2차 열람 대상: 아직 같은 시간을 믿지 않는 서진”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서진은 어쩐지 웃을 뻔했다.
슬퍼서가 아니라, 어머니가 너무 정확해서.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일지, 어떤 식으로 흔들릴지, 그걸 미리 계산하고 있는 사람의 문장이었다.
그는 기록지를 펼치려 했지만, 바로 그 순간 관측소 전체가 아주 작게 울렸다.
우웅.
낮고 긴 진동.
셋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단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들었어?”
유란은 이미 방 밖 복도 쪽을 보고 있었다.
“이 건물 안에서 뭔가 켜졌어.”
서진은 기록지를 들고 그대로 굳었다.
관측소는 폐쇄된 건물이어야 한다.
그런데 방금 울린 건 단순한 낙석이나 바람이 아니었다.
장치가 다시 작동하는 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중앙 관측홀 쪽 어둠에서 희미한 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푸른 공시등 같은 빛이 아니었다.
더 희고, 더 마른 빛.
별빛을 실내에 잘못 끌어다 놓은 것 같은 빛.
한재록이 벽가에서 거의 비명처럼 속삭였다.
“안 돼…”
유란이 돌아보았다.
“뭐가.”
한재록은 공포로 굳은 얼굴로 중앙 홀 쪽을 가리켰다.
“관측이… 다시 시작됐어.”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관측홀 중앙의 금속 의자들 중 하나가,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은 채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